세월호 문제를 덮는데 바쁘다보니 얻은 교훈이 하나도 없다. 박원순 시장의 말씀처럼, "국민, 시민을 안전을 위해서라면 과잉 대응이 늦장 대응보다 낫다" 을 아는 정치인이 있을까요.
포드자동차와 징벌적 조치. 사람의 목숨가지고 돈으로 장난치다가 손목아지 날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
정부는 2015년 6월 7일 오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환자가 발생하거나 다녀간 병원 24곳을 공개했습니다.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18일 만이었습니다. 이 글은 정부 발표 직전인 6월 6일에 쓴 글입니다. 이 점을 고려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메르스로 전국에 비상이 걸렸다.
세월호의 교훈은 어디에…
"세월호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자조 섞인 불평이 판을 친다. 공무원들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을 삼성서울병원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사방에 난무한다.
공무원들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직장을 잃지 않는다. 큰 실수는 매뉴얼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메르스로 몇 명의 사상자가 나오든 매뉴얼대로만 찬찬히 하면 욕은 먹어도 직장에서 잘릴 일은 없다.
세월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명의 인명을 구조하느냐보다는 매뉴얼대로 움직여서 구조작업 중 사고가 안 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세월호에 접근하려던 123정이 매뉴얼대로 큰 배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배에 사람이 있는 것을 뻔히 보고도 물러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그림: 최남균)
보건복지부 장관과 위험편익분석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유펜(UPenn;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출신의 경제학자다.
위험편익분석(Risk/benefit analysis)를 기본으로 해서 사는 보험, 연금 전문가이지 보건 전문가가 아니다. 위험편익분석은 인명마저도 가격으로 산출하는 제도다. 사고 이후 평가에서 써볼 수는 있어도 인명을 구조하는 일에 가격대성능비를 따지는 것은 미친 짓이다.
경제학자라면 위험편익분석을 하려 드는 것이 맞지만, 정무직 공무원이 된 이상 그는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봤어야 했다. 정치인이라면 비용이 들더라도 일이 풀리는 방향으로 문제를 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포드자동차와 징벌적 손해배상
1970년대 포드에서 생산하던 핀토는 달리다 충돌할 경우 연료통이 폭발하는 결함이 있었다. 포드는 이 결함을 고칠 경우 대당 11달러의 비용이 발생하고 180명의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포드는 이 숫자에 근거해 위험편익분석을 한 결과, 결함을 고칠 경우 1억3,700만 달러의 비용이 발생하는 반면, 180명의 사망 사고 배상비용은 4,950만 달러만 든다는 것을 확인했다.
- 리콜 = 결함 수리 = 1억3천700만 달러 (비용)
- 보상금 = 목숨값 = 4천850만 달러 (편익)
1971~1980년까지 미국에서 생산된 포드 핀토 (출처: Morven, CC BY SA)
포드는 비용적인 측면을 고려해 핀토를 리콜(recall)하지 않았고, 사상 사고가 이어졌다. 1972년 릴리 그레이가 13세의 그림쇼우와 차를 타고 가다 차량 간 충돌로 핀토가 폭발하여 릴리 그레이는 사망하고 리차드 그림쇼우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재판 과정에서 포드가 위험편익분석을 통해 결함 수리 비용보다 보상금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리콜하지 않았음을 밝혀졌다. 배심원들은 격분했다. 배상금 외에 1억2,500만 달러(한화 1,300억 원 상당)에 달하는 징벌적 배상을 그림쇼 가족에게 지급하도록 평결했다.
1978년에 1,300억 원은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돈 갖고 장난치면 망하게 해버리겠다'는 정신을 잘 보여준 예라 하겠다. 이것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이 사건을 통해 포드자동차에는 '바베큐 시트'라는 악명을 얻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차의 미국 점령이 본격화한다.
핀토 사건에서 배심원 평결은 1억2,500만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이었지만, 판사는 피해보상액은 250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350만 달러로 덜어 줬다(참고 링크). 항소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포드는 이후에도 익스플로러 생산 과정에서 전복사고의 결함을 알고서도 강행한 이유로 소송에 다시 휘말려 2004년 7월 샌디에이고 법정(1심)으로부터 3억 6,860만 달러의 징벌적 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2009년 연방대법원은 총 8천3백만 달러를 배상액으로 확정했고, 그중 징벌적 손해배상액만으로 5천5백만 달러로 책정했다. (참고 링크)
사람 생명도 '목숨값'으로 이익 형량하는 사회
문형표 장관이 1970년대 포드자동차 사장이었다면 어땠을까? 리콜 비용을 지급하고, 차의 결함을 고쳤을까? 아니면 배상금을 물어주는 편이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결정했을까? 문형표 장관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를 이번 정보 비공개 방침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하고, 주변에 여의도나 증권가에 친구 하나 있는 사람들은 일주일 전에 이미 D 병원이 삼성서울병원인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 이 순간까지 삼성서울병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6월 6일 현재 시점. – 편집자)
청와대는 대한의사협회 대신 대한병원협회장을 민간전문위원으로 끌고 들어와 전담반을 구성했다. 메르스 병원에 대한 정보 공개로 인한 위험편익비용에 대해 분석해보고, 병원을 공개했을 때 병원이 입을 손실과 이로 인해 감염될 사람들의 배상금을 비교 분석해봤을 것으로 추정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선 3억~5억 원 안팎 정도를 물어주면 어떠한 사망사고도 덮을 수 있다. 병원도 메르스 확진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지금 밝히지 않아 추후 소송에 휘말릴지라도 3억 원 정도 비용을 들이면 사망사고도 처리할 수 있으니 병원 이름 공개를 어떤 식으로도 막으려 드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나라
- 공무원들이 아무리 무능해도 매뉴얼대로만 따라가면 정년을 보장해주는 제도
- 기업이 아무리 잘못해도 법적인 배·보상만 마치면 사망사고마저 푼돈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제도
이런 제도가 계속 유지되는 한 우리는 이런 종류의 재난을 피할 길이 없다. 기업이 의도적으로 위험편익비용 계산을 통해 인명을 등한시한 것이 발견되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망할 만큼 타격을 줘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빼앗는 만큼 큰 처벌은 없다. 기업이 윤리적으로 움직여줄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사람 목숨을 두고 장난치는 기업은 망하게 해준다'라는 미국식 자본주의 징벌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기업이든 공무원이든 상벌이 분명해야 한다. (출처: HA! Designs – Artbyheather, CC BY)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공무원에겐 승진 기회와 보너스 등을 통해 격려해야 한다. 행시 몇 기인지 7급 출신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 잘하면 승진시켜야 한다.
반면에 매뉴얼대로만 하면서 보신주의에 빠진 공무원은 강등, 해직, 조기 퇴직 등의 벌을 줘야 한다. 그저 사고나 안 치면 정년보장이라는 안이한 사고로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VIP 보고가 먼저'라는 생각이나 하는 공무원들에겐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가 전국을 강타했다. 하지만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참사는 반복된다. '정부는 뭐 하는 거냐'라고 욕만 할 때가 아니고, 실질적으로 제도를 바꾸기 위한 연구와 대안 제시가 절실하다.